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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균, 민감과 공포사이 2015.05.27 10:29
글쓴이 : EDK 조회 : 844
집·직장·헬스클럽·슈퍼마켓 어디든 우글거린다는 세균, 신경쓰되 무서워는 마시라
영화 <슈렉>의 피오나 공주는 진흙 목욕을 즐기고 벌레를 씹어 먹지만 그 목소리를 연기한 캐머런 디아즈는 사실 공공시설의 문도 팔꿈치로 여는 ‘깔끔녀’다. 미식축구 선수인 랜디 모스는 한발 더 나간다. 맨손으로는 절대 손잡이를 잡지 않는 것은 물론, 손을 씻지 않은 사람은 냉장고 문 근처에도 못 가게 한다. 억만장자인 하워드 휴스는 아예 모든 물건을 티슈로 싸서 집기로 유명하다. 뿐만 아니라 창문과 출입문을 테이프로 발라 세균이 들어오는 것을 차단하고, 일간지는 반드시 3부를 사서 그중 가운데 것을 빼내 읽는다. ‘세균공포증’의 경지다.
도마보다 변기 깔개가 낫다?

△ (일러스트레이터/ 김대중)

그런데 ‘세균공포증’ 지경은 아니더라도 최근 세균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세탁기부터 도마, 비누, 마스크에 이르기까지 ‘항균’이란 수식이 들어간 상품도 덩달아 인기다. 언제나 친절한 TV는 내 입속부터 침대 시트 위까지 샅샅이 훑어 세균을 찾아낸 뒤 확대해서 눈앞에 보여준다. 날도 더워지고 습해지는데 찝찝하기 짝이 없다. 어떻게 해야 세균이 없는 곳에서 깨끗하게 살 수 있을까. 때마침 세균학 박사 찰스 거바와 자칭 ‘세균 민감족 엄마’라는 앨리슨 젠스가 함께 <굿바이 세균>이란 책에서 ‘일상 속 공포’의 실체를 파헤쳐줬다. 친절하게도.
이 책은 세균이 득실득실한 일상의 공간, 그 첫 번째로 ‘집’을 꼽았다. 집에서 세균이 가장 많은 곳은 주방의 행주와 수세미. 개수대 배수구, 쓰레기통, 도마, 냉장고, 화장실 문 손잡이 등이 그 다음이다.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주방용 수세미에는 720만 마리의 세균이 살고 있다고. 또한 90%의 주방 개수대에는 살모넬라균이 살고 있다고 한다. 주방 도마의 경우 저자가 “도마와 변기 깔개 중 무엇을 핥을지 결정해야 한다면 변기 깔개를 선택하라”고 주문할 정도다. 그렇다고 항균 도마를 쓸 필요는 없다. 기본적인 세척과 관리가 없다면 더러워지기는 마찬가지라고. ‘세균’ 하면 떠오르는 공간인 화장실의 경우 ‘젖은 화장실’일 때 문제가 더 심각하다. 물기가 많은 화장실에서라면 박테리아 1개가 밤새 10억 개로 늘어날 수 있다고. 고형 비누, 목욕용 스펀지, 샤워기, 칫솔 등 모든 것을 ‘말리는 것’만이 살길이란다.
직장에서도 세균은 열심히 일한다. 특히 세균에게 사무실 책상은 ‘진수성찬이 차려진 식탁’이라고 표현한다. 사무실에서 세균이 가장 많은 곳은 바로 전화기. 그 뒤를 컴퓨터의 키보드와 마우스, 수도꼭지 손잡이 등이 바짝 쫓는다. 책에는 “몸이 좋지 않을 때는 회사에 가지 말고 쉬라”는 상사에게 보여주고 싶은 말도 나오는데, 이는 아픈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머지 사람을 위한 말이다. 아픈데도 출근한 직원은 부서 전체를 와해시킬 수 있는 ‘세균 덩어리’로 보일 수 있다고. 잔인한 말이긴 하지만 한 직원이 감기에 걸리면 금세 주변 직원들이 골골거리는 상황을 생각하면 일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 사무실에서 매일 쓰게 되는 전화기와 키보드에는 세균이 가장 많다.
엄마의 세균공포증, 아이는 불안해져
그 외에도 헬스클럽과 대형 슈퍼마켓, 네일아트 전문점, 패스트푸드점 등 다양한 장소를 ‘세균 위험 지역’으로 부각됐다. 책 속에 인용된 필립 티어노 박사의 말을 빌리면 헬스클럽은 ‘사람들이 매일 세균을 맡기고 가는 곳’이다. 옷을 벗어젖힌 채 땀을 흘리는 많은 사람들은 감염을 퍼뜨리는 폭풍과도 같다고. 헬스클럽을 다니는 사람이라면 러닝머신에 설치된 땀에 전 헤드셋을 끼려다가 멈칫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실내 운동용 자전거에는 칸디다, 덤벨에는 포도상구균, 족색연쇄상구균, 샤워장 바닥에는 대장균 등이 많다. 대형 슈퍼마켓의 경우 고객이 손대는 것 중 가장 더러운 것은 쇼핑카트다. 미국의 칼럼니스트 마틴 슬론은 “대장균과 포도상구균이 카트에서 고객으로 또는 식품으로 전파된다. 어린아이가 카트 손잡이를 물어뜯는 걸 볼 때마다 나는 진저리친다”고 말한다.
이쯤 되면 갈 수 있는 장소가 없고 만질 수 있는 물건이 없다는 불평이 나올 만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은 이른바 ‘세균 민감족’의 건강 실전 노하우다. 하나 이 ‘민감’이라는 말과 ‘공포’의 경계가 아슬아슬하니, 자칫 세균의 존재를 과도하게 의식한 나머지 ‘세균공포증’으로 발전해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전문가들도 그 점을 지적한다. 우선 엄마의 지나친 ‘세균 경고’가 아이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 원장은 “엄마들이 세균공포증이 있어서 아이에게 지나치게 세균이 있을 법한 곳을 만지지 못하게 하거나 반복해서 주의를 주면 아이가 불안해하게 되고 뒤에 결벽증적인 행동을 하게 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세균에 대한 공포가 오염된 곳은 무조건 피하려는 강박증을 낳게 된다는 것. 또한 TV 프로그램이나 각종 광고가 혐오스러운 세균의 모습을 확대해 보여주거나 그 위험성에 대한 경고를 지나치게 하는 행위는 일반인들의 건강염려증과 공포심을 부추길 수 있다고 말한다. 결국 너무 많이 알게 되느니 ‘모르는 게 약’일 수도 있는 셈이다.
 
일단 당신이 세균을 보게 된다면
교류 전기를 발견한 니콜라 테슬라도 음식점에서 요리를 먹기 전이면 온갖 그릇과 컵의 세균을 닦아내느라 정신이 없었다고 한다. 그의 ‘세균공포증’은 한 동료 과학자가 현미경을 통해 끓이지 않은 물에 서식하는 세균들을 관찰하도록 한 뒤에 생겼다고 알려진다. 테슬라는 뒤에 “당신이 몇 분 동안만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소름 끼치고 끔찍하고 불쾌한 것들이 물의 구석구석에 퍼져 분열하는 장면을 보게 된다면 끓이지 않거나 소독하지 않은 물은 단 한 방울도 마시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까지도 더 많이 볼 수 있게 된 세상이지만 그 결과 인간이 행복해졌는지는 알 수 없다. 이 시간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기자의 손끝에도 세균은 득실댄다니 말이다.
 
출처: 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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